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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칼럼]【사회의 결을 짚다】도시를 사용하는 법 ① : 길 위의 흡연, 시민 탓이 아니라 도시 설계의 빈틈이다 - ‘금연 스티커’는 넘치는데, 흡연 부스는 없다 - 담배를 피울 곳이 없으니, 길에서 피운다 - 흡연 부스, 시민 갈등이 아니라 도시 설계의 문제다 최정민 취재본부장 2025-07-28 18:24:22
최정민 평론가는 미술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감정예술 콘텐츠 기획 브랜드 RECENT LAB(리센트랩)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평론가 등단 이후 여러 매체에서 ‘조선시대에도 SNS가 있었다?’, ‘도박은 조선시대 왕권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등 다수의 미술사 평론 칼럼을 발표해왔다. 미술사 속 시대정신을 풀어내는 【미술로 보는 시사】를 연재 중이며, 【사회의 결을 짚다】는 미술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감정과 구조의 결을 함께 짚어보는 칼럼 코너이다. 청년의 삶, 일, 가족, 돌봄, 관계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사회적 장면들이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를 다루며, 숫자와 문장으론 가닿지 못하는 일상의 결에 질문을 던진다.

최정민 취재본부장/미술평론가



꽁초는 길 위에 오래 남지 않는다. 치우기 전에, 누군가 또 그 위에 버리기 때문이다. 바닥에 쌓인 몇 개의 꽁초는 금지 대신 허용의 신호가 되고, 그 신호는 또 다른 흡연자를 불러들인다. 그렇게 생겨난 비공식 흡연 구역은 결국 도시의 안전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시작점이 된다. 흡연 구역은 없고, 금연 표지판만 넘쳐나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금지된 자리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비흡연자와 충돌하며, 길 위에 꽁초를 버린다. 그렇게 도시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익숙하게 학습해 간다. 금연 스티커는 어디에나 있지만, 흡연 부스는 어디에도 없다. 이 아이러니는 결국, 모두가 불편한 도시를 만든다.

 

2023년 말 서울시의 기준 실외 공공 흡연시설은 67개소, 2025년 6월 기준 전체 공공 흡연시설은 약 118개소에 불과하다. 자치구별로 평균 4~5개에 그치고, 서울시 성동구는 2022년부터 스마트 흡연 부스를 도입해 2025년 상반기 기준 총 14개소 운영 또는 운영 예정 수준까지 확대했다. 반면 서울시 내 추정 흡연자는 약 120만 명에 이른다. 흡연율은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 곳곳에서 흡연 수요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수요를 수용할 공간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흡연 부스 설치가 거론되면, 비흡연자들은 ‘왜 세금으로 흡연자를 위한 시설을 만드느냐’며 반발한다. 반면 흡연자들은 흡연 부스가 없기에 길에서 피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흡연을 권장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흡연을 질서 안에 놓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이처럼 흡연 부스는 ‘누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도시가 어떻게 조율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흡연 부스는 흡연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비흡연자의 호흡권을 지키는 방패막이다. 도시가 이 구조를 세운다는 건, ‘이외의 공간은 금연’이라는 선명한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흡연 부스를 만든다는 건 ‘흡연해도 된다’는 허용이 아니라, 이외 공간은 명확히 금연이라는 도시의 규칙을 선포하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금연 정책이 단속과 계도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도시 구조 안에서 흡연 질서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설치된 다수의 흡연 부스는 오픈형 구조로 인해 연기와 냄새가 외부로 퍼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연기와 냄새로 인해 부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게 만들며, ‘흡연 부스는 있어도 불편한 시설’이라는 반감을 심화시킨다. 결국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에게 불쾌한 공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흡연 부스가 진정한 공공 질서의 장치가 되기 위해서는, 폐쇄형 구조와 공기 정화 시스템을 기본 설계에 포함시키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핀란드 오울루시는 공공 휴지통과 재떨이를 결합한 ‘환경 미화함’을 도입해 도시의 꽁초 문제를 제도적으로 줄이려 하고 있다. 일본은 주요 보행자 거리에서 거리 흡연을 금지하고, 지정된 공간에만 흡연 부스를 설치하는 조례를 시행 중이다. 일부 국가는 흡연 부스의 공기 필터 성능까지 법으로 규정해, 간접흡연 피해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흡연구역의 설치·운영을 법제화하지 않고 자치구나 민간 시설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서울형 흡연부스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자치구와 민간 시설이 설치 시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자율 지침에 가깝다. 이 차이는 단지 ‘흡연의 허용 여부’가 아니라, ‘흡연의 방식과 공간’에 대한 문화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들 도시는 공통적으로, ‘흡연은 개인의 권리이며, 공간은 공공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는 전제 위에서 제도 설계를 출발시켰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쳤을 것이다. 전봇대 아래 모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그 옆을 지나가며 기침하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아이와 부모. 도시 질서는 그렇게 작고 반복적인 불편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결국,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유동 인구가 오가는 거리에는 공공 흡연 부스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운영비는 지자체와 공공기금이 분담하고, 기업 협찬으로 보완할 수 있다. 부스 외부에는 ‘이외 구역은 금연’이라는 안내판을 명확히 부착하고, 흡연자에게는 “부스 외 흡연은 단속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이 시설은 흡연자를 위한 특혜가 아니라, 비흡연자를 위한 공공 질서의 장치임을 시민과 함께 인식해 나가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단순한 시설 확충이 아니라, 공간을 둘러싼 시민 의식의 재구성이다. 북유럽 일부 도시는 ‘환경 미화함’을 통해 거리에서의 쓰레기 배출 습관을 제도적으로 유도해 왔다. 서울시도 시민 참여형 흡연 구역 설계를 시범 도입할 수 있다. 위치 선정, 디자인, 이용 수칙을 시민 투표와 공모로 결정한다면, 도시 공간에 대한 책임도 함께 생성될 것이다. 도시의 질서는 결국, 공간을 함께 설계하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담배꽁초 수거보상제’를 시행한 바 있다. 일정 무게 이상의 담배꽁초를 수거해 제출하면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서울시 성동구, 용산구 등은 현재도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울시 도봉구 등 다수 지역은 예산 과다와 폐기물 처리 문제, 재활용 불가 등의 이유로 폐기 처분만 반복하다 중단했다. 악취와 발암물질이 검출되며 환경부는 꽁초 재활용의 실효성에 ‘불가’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 사례는 도시가 흡연 문제를 ‘행동만 통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때 발생하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민의 실천을 요구하면서도, 그 실천을 수용할 구조를 마련하지 못하면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공간 없이 규칙만을 강조할 때, 질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담배꽁초 수거보상제는 시민 실천을 데이터화하고, 행동을 구조화하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작은 실천이 구조 안에 자리 잡을 때, 시민의 선택은 도시의 질서가 된다. 이처럼 시민의 참여가 제도 안에서 지속되기 위해서는, 행동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나 하나의 실천이 도시를 바꾼다”는 믿음은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구조와 설계에서 비롯되며, 공공이 방향을 제시하고 시민이 그 안에서 행동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문화는 현실이 된다. 흡연 부스는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갈등을 어떻게 조율하고, 사람들의 숨 쉬는 공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시 안의 질서와 불편을 함께 짚어보는 연속 칼럼, <도시를 사용하는 법>의 첫 번째 글입니다. ※ 본문에 언급된 흡연 시설 수 및 흡연자 통계는 서울열린데이터광장 및 서울시 자치구 공공자료, 지역사회건강조사(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기반 추정치를 참고하여 서술하였습니다. (통계 기준: 2023년 말~2025년 상반기, 일부 수치는 추정 포함) ※ ‘서울시 내 흡연자 약 120만 명’은 서울시 총인구(약 950만 명)에 성인 흡연율(12~14%)을 적용한 추산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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