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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일기(10)】 “곱게 생긴 젊은 짱돌이 군사법을 망가뜨릴 때” 김경호 컬럼니스트 2025-06-13 09:43:11

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  법률사무소 호인 대표 변호사 / 굿투데이뉴스 김경호컬럼니스트

2025년 6월 13일, 맑음. 그러나 법정의 공기는 한없이 무겁고 답답했다.


어제 00지방법원 행정법정에는 한 성실한 공무원의 인생이 걸린 재판이 열렸다. 뇌수술이라는 생사의 기로에 섰던 5급 사무관이, 군의 어처구니없는 행정 착오와 무책임한 판단으로 ‘강등’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법정에 선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의뢰인은 뇌수술 전 통원치료를 위해 정상적으로 청원휴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부대 담당자는 이를 누락했고, 후임자마저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해 또다시 누락했다. 그 후 의뢰인이 갑자기 쓰러져 뇌수술을 받게 되자, 부대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지휘관의 배려라며 연가와 공가 등을 끌어모아 입원 기간을 맞춰주었다. 그런데 복귀 후, 과거의 행정 누락이 발견되자 군은 모든 책임을 의뢰인에게 돌려 ‘고의에 의한 직무이탈’로 단정하고 강등 처분을 내린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법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재판장이 피고 측 군법무관에게 물었다. “원고의 고의를 입증할 휴가 관련 공문을 제출하시오.” 상식적인 요구였다. 징계의 정당성은 바로 그 증거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법무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법정 전체를 경악게 했다. “이제야 관련 기관에 요청해 보겠습니다.”


나는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소리쳤다. “징계는 명백한 증거로 하는 것입니다. 고의를 입증할 기초 자료 하나 없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강등 처분을 내린 군의 수준이 이토록 한심하단 말입니까! 심지어 그 서류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이제 찾아보겠다며 재판을 지연시켜달라는 요청은 이 나라 군사법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무책임의 극치입니다!”


나의 격한 항의에 군법무관은 내가 팔을 올린 것을 두고 ‘삿대질’이라며 문제 삼았지만, 재판장이 “삿대질이 아니다”라며 상황을 정리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법정에 선 20대 후반의 군법무관. 곱상한 얼굴에 암기하는 지식은 탁월해 변호사 시험에 빨리 합격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능력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일 뿐, 억울한 국민에게는 날카로운 흉기이며, 그가 몸담은 군 조직에는 사법 체계를 망가뜨리는 ‘곱게 생긴 짱돌’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히 한 군법무관의 자질 문제를 넘어선다. 정답만 외우면 과정이야 어찌 됐든 성공하는 비뚤어진 교육제도, 정의감과 공감 능력보다는 법 기술자만 양산하는 로스쿨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처참한 단면이다.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지켜야 할 군사법이 이처럼 무능하고 무책임한 ‘짱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는가. 오늘 법정에서의 공적 분노는 바로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강력한 경고이다. 군사법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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