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 법률사무소 호인 대표 변호사 / 굿투데이뉴스 김경호컬럼니스트
법의 저울은 추호의 흔들림 없이 수평을 유지해야 하며, 진실의 무게만을 달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군사법 체계 안에서, 이 저울은 녹슬고 기울어져 한 군인의 삶을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드러난 한 상관 명예훼손 사건은 군검찰의 무능과 무지, 그리고 불성실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를 난도질하고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극적인 자화상이다.
사건의 구조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군검찰은 A 중사가 2022년 12월 1일, 상관인 B 중사에 대한 허위 사실을 동료들에게 유포했다고 기소했다. 그러나 이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는 시간적 모순을 안고 있다. 검찰이 문제 삼은 '성희롱'이라는 핵심 정보는,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C 하사가 A 중사에게 직접 털어놓은 “2023년 초”에야 비로소 전달된 사실임이 수사기록을 통해 명백히 확인된다. “2022년 12월 1일”의 A 중사는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정보를 유령처럼 알아내어 발설한 초능력자가 되어야만 검찰의 주장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토록 명백하고 객관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군검찰은 무엇을 하였는가. 그들은 이미 다른 고소 건에서 C 하사를 조사하며 해당 진술을 확보했음에도 이를 외면했다. 대신 고소인 B 중사가 대동한 후배 두 명의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했다. 세 사람이 호랑이가 있다고 말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진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고사를 21세기 군사법정에서 실현시킨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진실을 규명해야 할 책무를 방기한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합리적 의심을 넘어 명백한 무죄의 증거 앞에서 눈을 감아버린 지적 나태의 극치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사법적 폭거가 일회성 일탈이 아닌 구조적 병폐라는 점이다. 야전에서 징계 사건을 들여다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늘 법정에서 어설픈 논리로 기소를 강행하던 군검사가, 내일은 징계 장교가 되어 또 다른 장병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그들의 엉성한 논리와 편향된 증거 판단은 징계위원회라는 이름 아래 너무나도 쉽게 통과되고, 징계위원장과 위원들은 전문성이라는 허울에 속아 거수기 역할에 머문다. 이는 전근대적 군사 사법의 망령이 첨단 기술과 민주주의로 무장한 대한민국 군을 여전히 배회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문제의 뿌리는 더 깊다. 어쩌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들이 양산되면서 법조인의 질적 하한선이 무너지고, 사회 곳곳에서 반헌법적 주장과 행동이 부끄러움 없이 자행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과 만나자, 무지와 무능은 통제 불가능한 권력이 되어버렸다.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재판주의와 같은 헌법적 대원칙은 이들 앞에서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한 젊은 군인의 인생을 건 재판은 군 사법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진실의 무게를 올바르게 측정하지 못한다면, 이는 단지 한 명의 억울한 군인을 만드는 것을 넘어, 군 전체의 사법 정의에 대한 불신을 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군사법 체계가 이토록 허술해서는 안 된다. 정의의 눈을 가리는 군복이 아니라, 정의를 가장 굳건히 수호하는 군복이 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