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요구하던 형사면책특례
이재명 정부에서도 여전히 요구하는 의사들의 민낯
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이 공약으로 공공의료 확충을 내걸었다. 아플 때 국민 누구도 걱정 없는 나라, 제대로 치료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의료계의 반응이 별로 탐탁지 않았다. 새로 공공병원 설립한다고 애쓰지 말고, 있는 병원을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병원을 설립하는 것과 기존의 병원을 지원하는 것은 같은 사안이 아니다. 공공병원이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기관이므로, 무료 혹은 염가로 봉사한다. 이때 의사는 일정한 봉급제를 원칙으로 한다. 공공병원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설이 더 확충된 보건소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다수 의사들이 지지하는 바 기존 병원이란, 공공의료 기관이 아닌,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각종 대학병원, 종합병원, 개인병원 등을 말한다. 이때 병원의 수익은 다소간에 병원 혹은 의사의 소득과 관련이 있고, 그러다 보니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과잉 진료가 공공병원의 경우보다 더 커지게 된다.
이처럼, 무료 공공병원의 설립 및 확충은 기존 병원에 대한 지원과는 그 성격에서 천양지차가 있다. 문제는 수익을 추구하는 병원 및 의사들이 공공병원의 설립에 반대하곤 한다는 데 있다. 이재명이 성남 시장으로 있을 때 성남 의료원을 설립하려고 했으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것이 그 한 예이다. 또 홍준표는 경남도지사로 있을 때, 누구 좋으라고, 기존에 있던 진주의료원도 폐쇄해 버렸다.
유럽의 경우는 공공병원이 대세를 이룬다. 영국은 완전 공공의료(NHS)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의료의 거의 90% 이상을 공공의료가 차지한다. 공공의료란 국민인 환자가 병원을 무료로 이용하고, 의사는 진료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봉급을 받으며, 병원의 수익이 의사 수입(성과금 등)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공의대 및 병원의 설립, 확충에 반대하는 민영 병원에서는 공공병원이 의료의 질이 낮고, 신속하게 진료받을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민영 병원의 과잉진료 관행이 다소간 횡행한다. 사람 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가 인술이 아니라 돈벌이 도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의료 소비자(환자)를 도구화하는 의사들 중심의 이기적 논리는 의사 형사면책특례 입법 요구에서 더 분명해진다. 형사면책특례란 의료 사고가 났을 때, 의사들에 대한 형사적 제재의 부담을 덜어 주자는 것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시달려서 본업인 진료 업무에 지장이 가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여기서 의료 사고는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경우로 한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불가항력‘이라는 수식어에 문제가 있다. 첫째, 의료 사고가 불가항력적인 것인지,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공의료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모든 의료 사고가 불가항력적인 것이라고 강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 사고의 경우 형사면책한다는 조항은, 모든 의료 사고가 불가항력적인 것이 되고, 모든 의사들이 형사면책 등의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으로 쉬 변질될 소지를 내포한 것이다. ‘불가항력’이라는 의제(사실이 아니지만 사실로, 본질이 다르지만 동일한 것으로 간주함)가 의사의 주의의무 소홀 여부에 대한 담론을 숫제 질식시켜 버리는 효과를 낳게 된다.
둘째, 의료 사고 때문에 환자에게 시달려서 진료 행위에 방해를 받는다는 의사들의 주장도 억지스런 데가 있다. 사고 위험에 대비해서, 미리 책임보험을 넣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보험은 비용이 발생하니까 들지 않으면서 환자들에게 시달린다고 아우성만 치는 것은 너스레에 불과하다.
작년 봄, 윤석열 정부하의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 위원회 및 보건복지부 등에서 의사들 책임보험 관련하여 제안을 냈다. 의료 중재원(이명박 정부에서 설립)에서 공제조합을 운영함으로써 책임보험에 갈음하고, 공제조합에 가입한 의사들에게는 형사면책특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책임보험(공제조합) 가입과 형사면책특례가 서로 무슨 관계가 있나? 양자는 서로 아무런 필연적 연관성이 없다. 책임보험에 가입하면 형사면책특례 입법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책임보험을 통해 보험사(공제조합)가 환자를 상대하게 되므로, 의사가 환자에게 시달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책임보험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고 처리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를 분리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의료 중재원에서 공제조합을 운영할 테니, 의사 형사면책특례를 입법하자는 것은 그 저의가 마뜩잖다. 형사면책특례의 혜택은 누리면서, 중재원의 공제조합 운영은 부실하게 할 가능성이 없지않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기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이유가 있다. 공제조합을,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인 독점기구로서, 의료 중재원을 통해서만 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의료 중재원은 지금도 감정과 중재를 독점하는 기관으로, 환자측(의료 소비자)을 도외시하고 공급자(의사)에게 편향해 있다는 불평이 회자한다. 의사들이 담합(카르텔)하여 침묵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의료 중재원에서 감정서가 딱 한 장 나오는데, 감정서가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그 감정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할 수도 없고, 그 진위여부도 확인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의사들은 원천적으로 공공병원 설립에 반대하고 병원의 민영화를 선호하며, 주의의무 준수 여부 관련 담론 자체를 생략한 채, 모든 의료사고를 응당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몰아갈 전망이다. 또 책임보험은 들지도 않고, 현재로서 공제조합이란 것도 운영하는 척 시늉만 내며 부실하게 할 전망에 있는데도, 의료 사고의 위험에서 오는 불이익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오히려 형사면책특례를 선제적으로 운운하고 있다.
의료 사고가 나도 처벌은 받지 않겠다는 의사들의 이 같은 심성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관료주의를 노정한다. 검사들은 증거를 조작해도 처벌받지 않고, 판사들은 재판을 잘못해도 처벌받지 않으려고, 꼼수의 판례를 만들어 놓았다. 대한민국이 관료 및 이기적 직업 집단의 담합으로 가히 무법천지가 되었다.
새로 대전협(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한성존이, 정부에 바라는 새 요구안으로, “불가항력의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형사면책)“를 언급하고, 또 ”공공의대 신설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시설 마련보다는 수련 문제 등을 고려해 중장기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등 언급을 한 것은, 의료 소비자(환자) 아닌 의사, 또 공공의료 아닌 민영 병원 중심의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이다.(한겨레, 202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