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민 취재본부장/미술평론가
아이의 얼굴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이 같은 시기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 자해를 하거나 옥상에 올라가는 등,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들이 이어졌고, 그들은 모두 친구 사이였다. 우울감과 가정불화 속에서 서로를 의지한 아이들은, 결국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표현했다. 선생님의 조기 발견 덕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교육 당국은 사태를 집단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한 학교의 사건이 아니다. ‘지금, 이 사회가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거울이다.
우리는 흔히 아동을 ‘미래의 주인공’이라 부른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현재의 주체다. 그들의 목소리는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들어야 할 것이다. 1991년,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을 비준하며 아동을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선언했다. 이후 아동학대방지법(나영이법), 아동복지법 등 관련 법령이 마련되었고, 신고 체계와 보호 시스템도 정비되었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삶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 학교나 가정에서 “말대꾸”, “버릇없다”는 말은 여전히 일상처럼 쓰인다. 이는 아동을 지시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오래된 시선의 흔적이다. 참여와 표현의 권리는 ‘들어주는 어른’이 없을 때, 쉽게 무력화된다.
우리는 아이에게 말한다. 공부는 네 미래를 위한 거라고. 그러나 그 ‘미래’를 위해 아이가 감당하는 ‘현재’는 종종 과중하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방과 후부터 밤까지 여러 학원을 전전하고, 피곤한 얼굴로 귀가하는 건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어떤 아이는 과학이 재밌다고 말하면서도, 하루에 네 개의 학원을 다니는 건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또 다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내준 숙제도 있어요. 안 하면 전 그날 죽어요.”, “몸이 힘들어요. 저도 가끔 방과후 활동도 참여하고 싶어요.”. 이 말들은 과장된 표현이라기보다, 감정의 과중 속에서 터져나온 신호다. “지금 힘들다”는 외침을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너무 조용해서 자주 놓친다. 어른의 시선은 여전히 결과에 머물고, 아이의 감정은 종종 계산되지 않는다.
아동이 겪는 어려움은 때로 매우 조용하고, 때로는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반복된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 아이는 부모뿐 아니라 학교 선생님, 학원 강사에게도 쉽게 맞을 수 있었다. 태도가 나쁘다는 이유, 숙제를 안 했다는 이유, 혹은 시험 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매를 맞는 일은 흔했고, 그 폭력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시되곤 했다. 지금은 아동학대가 뉴스와 사회적 논쟁을 통해 더 자주 드러나고, 그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아이의 말을 경청하려는 교사와 상담교사, 권리 기반 교육을 시도하는 학급도 늘고 있다. 사회는 점차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법과 기준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이 많다. 일상의 폭력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환경, 신고할 수 없는 구조, 말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많은 아이들은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법은 있지만, 보호는 제때 오지 않는다. 현장 개입은 느리고, 조치는 사후에 머물며, 예방 중심의 교육이나 감정 훈련, 권리 감수성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아동이 보내는 신호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발언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존중되는 구조 없이는, 어떤 참여도 허상에 머무른다.
광주의 아이들은 단지 ‘슬펐던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감정을 말할 언어가 없었고, 그것을 들어줄 청중도 없었다. 그들이 내민 손은 위태롭지만 분명한 신호였다. 그 신호를 읽고, 응답하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다.
우리는 아동을 ‘미래의 주인공’이라 부르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현재의 주인공’으로 진심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법은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지만, 아이의 권리는 시민 한 사람, 교사 한 명, 부모 한 사람의 태도 속에서 구체화된다. 아동을 존중하는 문화는 제도와 감정, 일상의 말투가 함께 만들어야 할 토대다. 그 권리는 법전 속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교실의 침묵 속에서, 가정의 목소리 톤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과 태도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어른인가. 오늘, 아이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건 언제였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연속 칼럼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편 〈아이의 분노는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교사를 향한 아이들의 공격적인 말과 행동에 숨은 배경과 현실을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