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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리 느티나무가 전하는 동학 최경선 장군의 마지막 약속 - 나무선생님의 두 번째 나무이야기 - 동학농민군 최경선 장군의 마지막 발걸음
  • 기사등록 2025-08-11 13:42:14
  • 기사수정 2025-08-11 14: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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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리 느티나무가 전하는 동학 최경선 장군의 마지막 약속 

 

나무선생님의 두 번째 나무이야기

 

동학농민군 최경선 장군의 마지막 발걸음

동학농민혁명군의 힘이 거의 잃어갔던 1894년 11월 말부터 최경선 장군은 전남 화순군 사평면 벽송리에 와서 민보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12월 3일 벽송리의 제실에 몸을 숨기다 12월 4일에 민보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당시 장군이 겪었을 공포와 분노,

동학 동지들을 잃고도 꺾이지 않으려 했던 의지,

마을에서의 배신과 압송의 순간…

그 모든 것은 지금 우리에게 “절대 잊지 말라”는 역사적 경고처럼 남아 있다.

 

세상은 결국 ‘정(情)’과 ‘정의’로 바뀌어야 하고,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한 역사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일본의 침탈에 대한 사과와 독도와 같은 영토 문제 역시 단순한 땅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정의, 반드시 우리 스스로 지켜야하는 우리의 사명감과 자존과 연결되어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나무는 약속을 지킨다!

세계평화라는 목표를 위해,

이 아픔과 진실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일본처럼 양심을 벗어난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은폐하려는 반인륜적인 행위에 

세계평화의 이름으로 그들을 그들의 언어로도 설득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

 

1894년 화순군 사평면 벽송리에서 마지막 동학혁명 전투를 하다 체포된 최경선장군 이야기다.

당시 그 마을에 300년 이상 된 당산나무인 느티나무가 이 모든 사실을 보고 있었고, 청동기 고인돌분 20여기가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지켜보고 있었다.

 벽송리의 느티나무 군락. 이곳에 130여년 전 살고 있었던 느티나무가 한 그루는 죽었고 다른 한 그루는 살아서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그 느티나무 중 한 그루는 역사의 아픔을 견디지 못한 듯 죽었고, 다른 한 그루는 지금도 그 벽송리 마을에서 최경선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하고 약속을 지키려는는 듯 당당하게 서 있다.

 130여년 전 역사적 사실을 안은 채 죽은 전남 화순군 사평면 벽송리 느티나무. 옆에 30여년 정도 수령의 느티나무가 지면에 쓰러짐을 온몸으로 지탱해주고 있는 모습. 나무의 위대한 지혜를 전해준다.


동학농민혁명 최경선 장군 소개

1859년 전라북도 정읍 태인 월촌리 출생(설)

1893년

1893.11 사발통문 거사 참여

1894년

1894 정월 고부 민란 때 고부관아 습격에 가담

1894년 3월 백산대회 편제시 선봉 지위관(영솔장) 수행

5월 6일–전주성 입성까지 영솔장 선봉 지휘

5월 7일 전주화약 이후 전봉준과 함께 전라도 일대–집강소 설치 및 감독 

9월 삼례회의 후 2차 봉기에 전봉준 지시고 광주 방면 병참 모집 담당 후 나주 재공략 시도

10월 하순~11월 나주와 광주 일대 전투 부진

11월 말 우금치 전투에 패하여 남하하여 잔여 병력 수습 및 재편

11월 말 ~ 12월 초 전남 화순 사평면의 벽송리, 동복면, 나주 일대 병력 수습, 사평면 벽송리 일대에서 민보군과 전투

12월 3일 새벽 최경선 장군과 일행이 사평면 벽송리 제실에 몸을 숨김

12월 4일 오윤슬이 민보군 300여명을 동원해 기습, 최경선장군 체포, 동학혁명군 157명 사살, 63명 포로 

12월 7일 전봉준 수감 중 최경선 압송 일본군에 인계되어 나주 초토영으로 이송 

1895년

3.29 최경선(崔卿宣) 장군 사형 선고(판결선고서 원본은 최영창(崔永昌)으로 표기). 

4.24 최경선 장군 당시 37세 사형 집행(좌감옥)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과 함께 교수형 

(나는 분노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왜 선한 이들은 죽임을 당하고 전두환은...)

(나는 작년에도 올해도 크게 분노한다. 왜 기후대응댐이란 핑계로 국토를 유린하는 이들을 방관하고 12.3 내란의 주범을 숨 쉬게 하고 있는지...)

 

최경선 장군의 유해는 친 형이 수습하여 밤에만 이동하여 고향 정읍에 안치되었다.

 

130년 전에 최경선 장군은 안따까운 37세의 나이로 조선의 보국안민과 만물평들을 위해 살다가 반인륜적인 일본군, 백성을 섬기지 않았던 고종과 민씨, 그 불의 아래서 옳지 못한 권력을 이용하고자 했던 민보군에 의해 생이 마감되었다.

 

아픔의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지금 되풀이되고,

130년이 지난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작년 12.3 내란과 이명박 정부의 4대강과 윤석열의 기후대응댐의 역사를 보라.

 

나는 작년 대한민국의 윤석열정부의 바르지 못한 행위를 보면서 130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역사의 슬픈 현실을 보고 1894년 을사오적이 2024년에 다시 부활함을 느끼며 얼마나 몸서리를 쳤는지 모른다.

다시 반복되는 역사의 시간 위에서 나는 ‘2024년 댐 을사오적’을 만들었었다.

1적 윤석열, 2적 김건희, 3적 김완섭(21대 환경부장관), 4적 김영록(2025년 현 전라남도지사-주민의 의사 하나 없이 댐 건설을 정부에 요청 했음), 5적(000-가장 가짜운 적은 거의 대부분 바로 옆에 있는 법이다.)

 

 동학혁명군 최경선 장군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한 인물의 비극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의지, 그리고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현실을 품고 있다.

 

최경선 장군이 그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듯,

우리도 촛불혁명처럼 끝까지 정의와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겨야 할 130년의 증언과 목격자 느티나무


다음은 130년이 지난 전 최경선 장군의 모든 것을 본 느티나무의 이야기다.


 사진의 가운데 위치한 가장 두꺼운 줄기가 130여년 당시에 동학혁명군과 최경선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전남 화순군 사평면 벽송리의 느티나무.


동학 최경선 장군의 약속을 지키는 벽송 느티나무

 

나는 사평면의 벽송리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계절과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해왔다.

 

1894년 겨울, 

매서운 바람이 벽송리 마을을 파고들던 날이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한 사내와 동학혁명군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의 이름은 최경선, 동학농민혁명 장군이었다.

그의 눈빛엔 피로와 슬픔, 

그리고 꺾이지 않은 불꽃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그날 새벽, 총소리와 함성이 안개를 가르며 몰려왔다.

관군과 일본군,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숨죽인 시선이 뒤엉켰다.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가 포위되는 순간,

차가운 쇠사슬이 그의 두 손목을 감싸던 순간,

하늘로 올라가는 그의 마지막 한숨과

마지막 슬픈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이 전해지기를 부탁했다.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날의 일을 잊기도 했고, 

왜곡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장군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불의가 정의를 누르고, 

약자의 목소리가 짓밟히는 순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이제 바람을 타고, 

이 마을을 넘어, 

이 나라를 넘어 속삭인다.

 

정의와 자비와 사랑, 

그리고 평화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나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바란다.

누구도 억압받지 않고,

누구도 빼앗기지 않으며,

누구도 두려움 속에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리고 나는 원한다.

이 몸이 서 있는 이 자리,

그날의 기억과 진실을 간직한 내 뿌리와 가지가

근대문화유산으로 남아,

후손들에게 역사의 목소리를 전하기를.

그것이 나, 벽송리의 느티나무가 뿌리를 뻗어 바라는 세계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사진출처-배서영, 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동학기념재단, 국가기록원, 민족운동회관, 화순문화재단, 정읍시청, 남도일보, 한국농정신문, 울산저널)


모후산 자락에서 최경선 장군께 존경과 죄송함을 표하며 

2025년 8월 11일 배서영 나무선생님, 벽송 느티나무와 교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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