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컬럼니스트
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 법률사무소 호인 대표 변호사 / 굿투데이뉴스 김경호컬럼니스트
남군과 여군이 야전에서 전시 대비 전우애로 동고동락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현대 군에서, ‘강제추행’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은 조직의 신뢰를 저해하고 전투력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적법하고 상식적인 판단 기준을 야전 지휘관과 장병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최근 군사법원 한 판결(2023고519)은 이 중요한 갈림길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군사법원은 한 사건에 포함된 두 가지 행위에 대해 각기 다른 판단을 내렸다. 하나는 유죄, 다른 하나는 무죄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강제추행’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유죄로 인정된 행위는, 피고인이 술에 취해 누워있는 부하 여군의 등 뒤에 밀착해 눕고,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끌어안으며 “사람을 설레게 해놓고 그냥 자려고 하냐?”라고 말한 것이다. 이 행위는 그 자체로 명백한 성적 의도를 내포하며,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반면, 무죄로 판단된 행위는 피고인이 길에서 “방을 잡고 술을 더 먹자”며 피해자의 손목을 수차례 잡아끈 행위이다. 법원은 이 행위가 피해자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을 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행인이 왕래하는 공개된 장소에서 발생했고 ▲손목을 잡은 시간이 길지 않았으며 ▲손목 자체가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로 보기 어렵고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다른 접촉이 없었다는 점 등을 종합했다. 결론적으로, 피고인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추행’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 두 판단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객관적인 성적 의도와 피해자의 성적 자유 침해 여부’이다. 피해자의 주관적인 불쾌감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모든 성희롱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러나 ‘성인지 감수성’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인 ‘증거재판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넘어설 수는 없다. 피해자의 진술은 핵심 증거이지만, 그 진술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객관적 사실과 정황에 부합해야 유죄의 근거가 된다.
결국 강제추행의 성립은 피해자의 ‘기분’이 아닌, 행위의 ‘객관성’에 달려있다. 행위의 경위, 구체적인 태양, 장소의 개방성, 접촉 부위의 성적 상징성, 그리고 행위자의 의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손목을 잡는 행위가 불쾌할 수는 있으나, 그 자체를 등 뒤에서 끌어안는 행위와 동일선상의 ‘강제추행’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상식적인 결론이다.
강한 군대는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문화 위에서 탄생한다. 이를 위해선 감정적 비난이나 주관적 판단이 아닌, 법과 상식에 기반한 명확한 행동 기준이 야전에 뿌리내려야 한다. 군은 성(性)과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하고 본연의 임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젊은 군검사와 징계장교는 자신의 젊은 세대의 ‘감정과 기분’으로 판단을 멈추고 객관적인 법기준에 비추어 야전에서 고민하는 치열한 모습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