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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법 칼럼(26)】 어깨를 잡는 손, 그 무게를 재는 법 - 군의 ‘강제추행’ 판단 기준을 묻다.
  • 기사등록 2025-07-12 15: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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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  법률사무소 호인 대표 변호사 / 굿투데이뉴스 김경호컬럼니스트

남군과 여군이 함께 복무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 우리 군의 병영문화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성(性) 관련 군기는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해졌지만, 그 이면에서는 무엇이 ‘추행’이고 무엇이 ‘오해’인지를 둘러싼 혼란과 불신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선의의 격려나 업무상 불가피한 접촉마저 ‘강제추행’의 굴레에 갇히는 사례가 속출하며, 야전 지휘관들과 동료 장병들은 서로를 잠재적 가해자 또는 예민한 고소인으로 경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군 조직의 신뢰와 전투력을 좀먹는 심각한 위협이다.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과 법률상 ‘객관적 추행’ 사이의 간극이다. 최근 한 법원은 직장 상사가 뒤에서 다가와 양어깨를 한 차례 세게 움켜잡은 행위에 대해 강제추행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는 ‘무섭고 불쾌했으며 성적 수치심도 느꼈다’고 호소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가장 주된 감정은 ‘놀람’과 ‘공포’이며, 어깨라는 신체 부위의 비성적인 특성, 다수가 근무하는 공개된 장소라는 상황 등을 종합할 때, 이를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는 폭행으로 평가될 수는 있을지언정,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강제추행’의 고의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명확한 선언이다(2023고정13 판결 참조).


이 지점이 바로 ‘강제추행’의 성립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단순히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모든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아니다. 행위의 객관적 성격,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행위가 이루어진 경위와 맥락 등을 종합하여 사회 통념상 명백히 ‘성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물론, 우리는 ‘성인지 감수성’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성범죄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피해자다움’이라는 낡은 편견으로 2차 가해를 자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이자 법원의 확립된 태도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성인지 감수성’이 마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만능 열쇠처럼 오용되기도 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무조건적으로 담보하는 보증수표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증거재판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 안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경우, 그 진술은 더욱 엄격한 논리적·경험적 합리성과 객관적 정황과의 정합성을 갖추어야 한다.


군에서도 수사와 기소의 남발은 결코 건강한 군 조직을 만들 수 없다. 불쾌한 감정이 곧바로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풍토는 군 내부의 인간적 유대를 단절시키고, 적극적인 리더십을 위축시킬 뿐이다. 이제 우리 군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주관적 호소의 무게를 존중하면서도, ‘강제추행’이라는 범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을 엄격히 구별하는 이성과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신체 접촉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대신, 그 행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법리와 상식에 따라 판단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그것이 바로 억울한 가해자의 양산을 막고, 진정한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며, 전투형 강군으로서의 군 기강을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현재 군은 자유주의 성적 선택의 자유라는 ‘문란함’과 ‘강제추행 과잉’이 오묘히 공존하는 모순의 시대에 처해 있다. 상식의 붕괴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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