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컬럼니스트
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 법률사무소 호인 대표 변호사 / 굿투데이뉴스 김경호컬럼니스트
지휘관의 어깨는 천근만근이다. 부하의 고충을 외면할 수 없고, 규정의 무게를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선의의 조치들이 도리어 자신을 겨누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역설적 상황이 야전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 지휘관의 법률상담 내용은 우리 군의 지휘 및 법무 시스템의 경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극적 단면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한 병사가 동료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지휘관을 찾았다. 지휘관은 즉각 성고충상담관에게 연결하는 정석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피해 병사의 의사가 번복되고, ‘마음의 편지’를 통해 오히려 그가 가해자로 지목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사건은 꼬이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징계 조사를 용인하자, 피해자이자 피징계자가 된 병사는 지휘관을 포함한 간부 전원을 ‘경찰 신고 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이 지휘관은 왜 이런 궁지에 몰렸는가? 성범죄 발생 시 ‘지휘관은 절대 관여하면 안 된다’는 소극적 자세, 정확한 정보가 제때 공유되지 않는 정보의 비대칭성, 그리고 무엇보다 복잡한 법적 딜레마 앞에서 기댈 곳 없는 지휘관의 고립무원의 현실이 그를 옥죄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조언을 구해야 할 법무참모를 찾는 지휘관이 드물다는 현실이다. 필자가 만난 수많은 중견 지휘관들은 법무참모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에 실망해 아예 법률 자문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이는 군 사법 시스템에 대한 야전의 깊은 불신을 드러내는 위험 신호다. 각 부대 법무참모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 법률 지원의 질이 천차만별이라면, 이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가 수년간 부르짖어온 '군사법 레드팀(Military Law Red Team)'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레드팀은 군사적 훈련에서 아군의 계획을 적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취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군사법 레드팀은 사건 발생 초기, 지휘관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법적 위험과 오해의 소지를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점검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는 기존의 인권담당법무관 제도를 보완하고 확대하는 개념이다. 피해자의 인권 보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피혐의자의 방어권 보장이며,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헌법적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군사법 레드팀은 군검찰이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듯, 혐의를 받는 군인의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는 주장과 증거를 대등하게 검토하여 지휘관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휘관은 섣부른 판단이나 절차적 오류의 덫에 빠지지 않고, 사건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지휘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문제가 터지면 ‘나 몰라라’ 하는 현재의 방식은 지휘권의 위축과 군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만을 키울 뿐이다. 이제는 군 지휘관들이 고립된 섬이 되지 않도록 든든한 법적 방패막이 되어줄 '군사법 레드팀'의 창설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변화를 넘어, 군의 전투력과 직결된 지휘권의 신뢰를 회복하고, 더 큰 정의, 즉 대의(大義)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그리고 이번 12.3. 비상계엄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한민국 변호사 41% 이상의 허접한 변호사들에게 더 이상 국토방위의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에게 고액의 변호사 비용을 1차적으로 절감시킬 수 있는 정책은 바로 군인의 인권은 ‘돈’이 아닌 ‘명예’라는 철학에 정확히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