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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칼럼]【사회의 결을 짚다】아이의 분노는 어디로 가는가 -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 교사는 소진되고 아이는 낙인찍힌다 -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분노가 된다, 그리고 그 책임은 늘 한 사람에게 지워진다 - 분노하는 아이와 무너지는 교사,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 기사등록 2025-07-07 19:36:48
  • 기사수정 2025-07-28 18: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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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평론가는 미술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감정예술 콘텐츠 기획 브랜드 RECENT LAB(리센트랩)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미술사 속 시대정신을 풀어내는 기존 코너 【미술로 보는 시사】를 연재하며, 등단 이후‘조선시대에도 SNS가 있었다?’, ‘도박은 조선시대 왕권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등 다수의 미술사 평론 칼럼을 발표해왔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회의 결을 짚다】는 미술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감정과 구조의 결을 함께 짚어보는 칼럼 코너이다. 청년의 삶, 일, 가족, 돌봄, 관계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사회적 장면들이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를 다루며, 숫자와 문장으론 가닿지 못하는 일상의 결에 질문을 던진다.


최정민 취재본부장/미술평론가


“죽여버린다.”, “너 사진 인터넷에 올릴 거야.”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던진 이 말은, 단지 버릇없는 말일까. 이건, 학교 안에서 감정이 폭발하고 있다는 신호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교사를 향한 아이들의 분노는 폭언과 위협을 넘어 기물 파손과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 지도를 하던 교사가 야구방망이로 폭행을 당했다. 학부모의 민원으로 아동학대 혐의까지 받았지만 이후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수업은 이미 중단되었고 교사의 일상은 크게 흔들렸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조기 대응 없이 교사가 폭력에 노출되는 구조와 감정노동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자는 말이 그 모든 감정을 교사가 감당하라는 뜻이 되어선 안 된다. 지금의 학교는 감정의 전선 한복판에 교사를 단독 배치하고 있다. 상담 인력은 부족하고 위기 개입 시스템은 느리다. “공무원 나부랭이”라는 말을 들으며 혼자 상담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은 아이의 권리도 교사의 권리도 지키지 못한다. 교사는 감정의 대면자이자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누구도 이 구조에서 버틸 수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분노하는가. 전문가들은 이 분노가 단순한 공격성이 아니라 수치심과 억압, 무시당한 감정에서 비롯된 신호라고 말한다. 소아정신의학과 상담 사례에 따르면 아이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 행동으로 이를 드러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어른들은 내 얘기를 안 들어줘요”라는 말은 단지 반항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소외된 감정의 흔적이다.

 

감정은 발화되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터진다. 그것이 분노고 때로는 위협이 된다. 교사에 따르면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으로 약을 복용 중인 아이들이 많다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약을 깜빡한 날엔 충동 조절이 어려워지고 또래와의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오늘 약 안 먹었어요. 그래서 제어가 안 돼요.” 짧은 말 속에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는 아이의 감각이 숨어 있었다. 아이들은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감정을 설명할 언어를 배우지 못한 채 폭발로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정서 행동특성 검사와 전문 기관 연계를 통해 조기 진단과 지원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보다 그 제도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어떤 보호자는 “우리 아이는 원래 특별해요”라며 상담을 거부하고 또 어떤 보호자는 치료를 이어간다. 상담과 감정 교육은 특별한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의 권리다. 실제로 2021년 서울시교육청 검사 결과 정서 행동 관심군 학생 중 75.3%는 전문기관에 연계되었으나 나머지 약 24.7%는 학교 내에서만 관리되고 있었다. 감정의 문제를 인지하고도 개입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오히려 위험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학교는 더 이상 국어와 수학만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다. 관계의 방식과 감정 언어를 배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이의 분노를 단지 문제행동으로만 규정하면 감정은 잘못이 되고 아이는 가해자가 된다. 그러나 분노는 때로 말이 닿지 않는 환경에서 감정을 살아낸 방식일 수 있다.

 

교사 또한 이 구조 안에서 점점 무너지고 있다. 2023년 교사노조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58%의 교사가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했으며 그 이유의 77.5%는 교권 침해 및 과도한 민원 때문이었다. 또한 56.7%는 학생에게서, 56.0%는 보호자로부터 교권 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정서적 고갈과 보호받지 못한 감정은 결국 교사조차 지속 불가능한 감정노동자로 만든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교사의 문제이기도 아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감정이 말해지지 못하고 해석되지 않는 구조의 문제다.

 

우리는 교사의 인권과 아이의 감정이 함께 보호받아야 할 공동의 권리라 믿는다. 한 사람의 헌신만으로 유지되는 구조는 결국 모두를 소진시킨다. 감정은 배우고 길러야 할 사회적 소통 역량이다. 감정을 말할 수 없게 만든 구조를 그대로 두고 아이의 분노만 문제 삼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감정을 문제로만 여기는 사회에 머무를 것이다.

 

이제는 감정을 배제하는 교육이 아니라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조율해야 할 언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적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감정 중심 상담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감정 언어 교육을 정규 교과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4학년 이상과 중학교 단계에서 감정 표현과 조절 능력을 기르는 감정 언어 교육을 정규 수업 또는 프로젝트형 수업으로 편성하고 정기적인 감정 워크숍과 부모와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연계 상담 체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감정 언어 교육은 인성교육기본법에 따른 학교폭력 예방 교육과 연계하거나, 기존의 인성·심리교육 교사 또는 전문상담교사가 주관해 정서 중심 교안으로 편성할 수 있다. 해당 교육은 별도 교재 없이도 사례 기반의 토론, 역할극, 감정 단어카드 등의 방식으로 운영이 가능하며, 정기성과 누적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실제로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감정 표현 카드와 역할극을 활용한 정서수업이 시범 운영되고 있으며, 교육청 차원의 정서 지원 프로그램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단기적 처방이 아니라 정서적 안전을 제도화하는 구조적 전환이다.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다뤄야 할, 공공의 언어이자 공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사회의 결을 짚다】아동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의 후속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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