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컬럼니스트
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 법률사무소 호인 대표 변호사 / 굿투데이뉴스 김경호컬럼니스트
군이 젠더갈등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 그 중심에 군사법원이 있다. 정의를 세워 갈등을 해소해야 할 군 판사들이 오히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법리를 오독하고 남용하여 갈등을 증폭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범죄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 2차 피해의 두려움으로 인해 보일 수 있는 비전형적 반응을 이해하고,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으로 그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하지 말라는 섬세한 사법적 요청이다. 이는 결코 증거재판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을 뛰어넘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군사법원의 판결문은 가관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적용하려면, 피해 여군이 실제로 위력 관계나 폐쇄적 환경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불가능했던 ‘특수한 상황’이 존재했음을 먼저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군 판사들은 단지 ‘여군’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수한 상황을 전제해 버린다.
더 큰 문제는, 피고인인 남군 측이 피해자 진술의 명백한 모순점이나 객관적 탄핵 증거를 제시해도 이를 묵살하는 태도이다. 예를 들어, 추행 장면을 “본 적이 없다”는 동석자 두 명의 증언이 있어도, 판결문에는 이들의 증언을 왜 믿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다. 피해자가 사건 이후 피고인에게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낸 객관적 증거가 제출되어도, 이에 대한 판단은 생략된다. 그저 판결문에는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다”는 선언적 문구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끝이다. 그러면 민주주의 판결이 아닌 권위주의 판결이 된다.
이것은 재판이 아니다. 법복을 입은 권위주의의 표출이자, 판사에게 부여된 ‘판단하고 설명할 의무’에 대한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진술의 모순에 대한 피고인의 합리적 의심조차 판단하지 말라고 허락한 적이 없다. 피해자의 진술을 함부로 배척하지 말라는 것이지, 피고인의 방어권을 짓밟고 반대 증거를 읽어보지도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런 식의 재판이 반복되니 군 내에서는 ‘여군이 문제 제기만 하면 끝’이라는 냉소와 불신이 팽배한다. 억울한 피고인은 양산되고, 남군과 여군 사이의 신뢰는 깨진다. 군 판사들이 성인지 감수성 뒤에 숨어 가장 손쉬운 판결을 내리는 동안, 군 조직은 안에서부터 곪아 터지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약자를 보호하는 방패이지, 재판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젠더갈등을 심화시키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군판사들의 영향으로 군법무관들 전체가 성사건에 유독 민주주의가 아닌 권위주의 태도가 헌법정신인양 제정신이 아니다. 야전은 그게 정답인지 알고 주변에 젠더 갈등은 폭발 직전인데 군법무관들의 판에 그냥 놀아 나고 있다.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