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컬럼니스트
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 법률사무소 호인 대표 변호사 / 굿투데이뉴스 김경호컬럼니스트
징계받은 한 간부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육군본부에 항고한 지 80일. 절차적 권리 보장을 위한 마지막 보루는 먼지만 쌓여갔다. 수 차례의 문의 끝에 돌아온 육군본부 법무실의 답변은 가히 충격적이다. “항고심사계획서를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심의 기한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직무유기를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는 해괴한 궤변이다. 법규가 정한 절차를 개시할 첫 단추조차 꿰지 않은 자신의 태만을, 거꾸로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로 삼은 것이다. 이는 변호사 시험 붙었다고 하는 자의 양심을 저버린 행태이자, 규정과 장병의 권리를 대놓고 조롱하는 오만함의 극치다. 일선 부대도 아닌, 군 사법의 심장부인 육군본부 법무실의 기강 해이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세간의 비판이 사실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육군규정 180 「징계규정」 제72조 제1항은 “항고심사위원회는 항고심사권자가 항고심사계획서를 보고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심의·의결하여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30일의 범위에서만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사건 항고장은 3.13.자로 육군본부 법무실로 송달되었고, 60일 후는 05.11.까지 부득이한 사유 통보 한번 없다가 민원을 제기하니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육군 참모총장 명의 문서로 답변한다. 기가 찬다.
군법무관은 군의 법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런 그들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형식논리의 함정에 숨어 성실의무를 내팽개친다면 군 사법 체계는 뿌리부터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법을 지켜야 할 자가 법 위에 군림하려 들 때, 장병들은 과연 누구를 믿고 군 생활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이는 단순한 업무 해태를 넘어 군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다.
육군 참모총장은 이번 사태를 일개 법무관의 일탈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썩은 뿌리를 도려내는 심정으로 철저한 감찰과 엄중한 문책에 나서야 한다. 법을 무시하는 법무관은 존재 이유가 없다. 군의 기강은 총구 이전에, 법을 집행하는 자의 엄정한 자세에서 비롯됨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