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민 취재본부장장
최정민 취재본부장/미술평론가
우리나라는 현재 OECD 국가 중에서도 단연코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2024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7명대에 불과하다. 수많은 재정 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출산율 문제는 단순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개인의 선택으로만 바라볼 수 없으며, 결혼, 주거, 고용, 사회 분위기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결혼 자체가 늦어지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등 안정적인 직장에 진입하는 데만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시간을 보낸다. 그나마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입사에 성공한다 해도, 조직에 적응하고 자기 자리를 잡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연애를 하고 있는 이들도 결혼은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학자금 대출 상환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월급을 모아도 결혼이라는 큰 결정을 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연애는 하지만 “아직은 좀 더 일에 집중하고 싶다”거나 “조금 더 안정되면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무책임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미루는 선택에 가깝다.
주거 문제는 이 선택을 더욱 지연시킨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경우, 직장을 옮기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집은 최대한 직주근접을 원하게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통근에 하루 왕복 2시간, 많게는 3시간 이상을 쓰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피로와 시간 부족 속에서 집은 단지 거주 공간이 아니라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반이 된다. 이 기반이 불안정할수록 결혼은 더 늦어지고, 출산은 더 멀어진다.
이렇게 어렵게 결혼에 이르렀다고 해도, 아이를 갖는 결정은 또 다른 고민을 동반한다. 단순한 금전 지원만으로는 출산을 결심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 내 분위기와 제도 운영의 온도차는 출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일반 기업에서는 여전히 여성 직원이 출산을 하면 경력 단절의 위협을 느껴야 하고, 복귀 후 자리 이동이나 평가에서의 불이익을 걱정해야 한다. 남성의 경우도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더라도 “눈치를 봐야 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실상 많은 중소기업, 사기업에서는 육아휴직이 명목상만 존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기업이나 공무원처럼 제도적 기반이 갖춰진 경우에만 출산과 육아가 비교적 가능하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와 같은 공공 영역에서도 남성 교사가 출산휴가를 쓰는 것에 대해 눈치를 주거나 회피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보도도 있다.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누구에게나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출산율이 낮아진다며 언론은 청년을 탓하고, 국가는 재정을 언급하지만, 정작 청년에게 ‘낳을 수 있는 여건’은 허락하지 않는다. 한쪽에선 “아이를 낳아달라”며 지원금을 쥐여주고, 다른 쪽에선 “육아휴직 좀 그만 쓰라”는 눈치를 준다. 구조는 낡았고, 현실은 모순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출산율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방치된 구조의 정산표에 가깝다.
청년들은 사랑하고 있다.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출산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의 문제로 변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이제 단기적인 현금 지원이나 일회성 인센티브에 머물러선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이 ‘가능한 선택’이 되도록 삶의 기반을 재설계해야 한다. 먼저 육아와 경력이 양립할 수 있도록 기업 문화와 제도 운영을 정비해야 하고, 유연근무제나 시간제 근무 등 다양한 근로 형태가 보편화될 수 있어야 한다. 공공 보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부모가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 기반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수도권 청년의 주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전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출산율 저하는 어느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이 사회가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을 얼마나 함께 감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결과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청년들은 ‘결혼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해도 괜찮을까’를 수없이 고민하고 있다. 이 고민이 “그래도 괜찮겠다”는 선택으로 이어지기 위해, 이제는 사회 전체가 응답할 차례다. 출산율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신호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가 되어야, 아이도 태어날 수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가 아니라, 감히 낳을 수 없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