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원 발행인
(사진=화순 세량제) 굿투데이뉴스 대표 / 죽향풀뿌리정책포럼 회장 정석원
필자는 얼마 전에 컬럼에서 육군사관학교의 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그것은 충동적 외침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수차례 무너뜨린 ‘쿠데타의 배양소’에 대한 냉철한 역사적 성찰이었다. 육사는 단지 장교 양성기관이 아니었다. 정치군인을 길러내는 시스템이었고, 권력과 밀착된 군 내 신분제의 정점이었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육해공군사관학교를 통합하자는 방안을 제시하며 “육사의 힘을 빼겠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변화의 제스처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명찰만 바꿔 다는 기계적 통합에 불과하다.
통합한다고 쿠데타 유전자가 사라지는가?
이름을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육사의 폐해는 단지 ‘단독 운영’이라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엘리트 장교 독점 시스템, 장군 진급의 구조적 편향, 국방 내 권력의 집중이라는 본질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육사는 전체 장교의 5% 남짓을 배출하지만, 준장 진급자의 70%, 전체 장군의 80%를 차지한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통합사관학교라는 외피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3군을 통합해 한 해 600명을 배출한다면, 기존보다 더 강력한 통합 권력 블록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단일화된 사관학교는 초급 장교 양성의 효율은 높일 수 있겠지만, 권력 집중을 오히려 더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조직은 커졌고, 명분은 줄었으며, 감시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힘 빼기’가 아니라 ‘해체’가 해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을 분산하겠다’는 정치적 수사 몇 마디가 아니라, 군 내부 권력 구조의 해체와 민주적 통제 시스템의 구축이다. 육사의 힘을 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시스템 자체를 해체하고 ROTC, 3사관학교, 학사장교 등 다양한 출신이 상호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군 인사 체계로 개편하는 것 뿐이다.
진정한 군 개혁은 민주주의 안에서 군이 자리매김하는 방식의 재설계 이어야 한다. 쿠데타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배웠다. 다시는 정치 군인의 시대가 돌아오지 않도록, 구조를 뜯어 고쳐야 한다. 통합은 미봉책이고, 폐지만이 근본 해법이다.
육사는 이제 끝나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군은 국민의 명령에 복종해야지, 정권을 넘보는 훈련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통합사관학교가 아니라, 완전한 재편, 그리고 육사 폐지가 진정한 개혁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