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영 컬럼니스트
민주당 원로들이 신임 민주당 대표 정청래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용득(전 의원), 이해찬(전 당대표), 정세균, 김진표, 임채정, 김원기, 문희상, 박병석(전 국회의장) 등 원로가 정청래에게 쓴 소리를 했는데, “과격하지 말라”, “당원만 보지 말라”, “정치 복원” 등을 당부했다고 한다.
정세균은 “상대와 협력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 복원’”을 주문했다. ‘정치 복원’이란 여기서 ‘여야의 무한 대치를 끝내자는 데 공감했다는 뜻’으로 쓰인다. 국힘당 대표 한동훈과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 회담 후, 양측이 ‘정치 복원’에 뜻을 같이했다고 하기 때문이다.(조선일보, 2024.9.2.)
정세균에게 ‘정치’가 뜻하는 것은, 한편으로 여야 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가 “상대와 협력하는 정치 복원”이라 할 때 상대는 국힘당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란을 지지하는 국힘당을 앞에 두고, 정세균은 지레 여야 간 대치를 끝내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다른 한편으로, 정세균은 정치를 “국민의 뜻을 획일적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국민 사이에 다양한 뜻이 개진되고, 그것을 헤아리고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뭉뚱그려 통합하는 것이라 정세균은 본 것이다. 그 통합의 주체는 민주당 및 그 당대표 정청래이다. 정세균이 정청래에게 그렇게 주문하고 있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 정세균은 “당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정당도 중요하지만, 당원이 아닌 국민에게 존중받고 함께하는 정당으로 발전해야 미래 지향적”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당원이나 국민은 공히 그 자체로서 이견을 노정하고 서로 다투는 정치 주체가 아니라, 정당을 지지하고 정당을 발전케 하는 도구가 된다. 당원과 국민은 정치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들러리가 된다는 뜻이다.
정세균이 생각하는 ‘정치’란 여야 국회의원들이 서로 정치 복원하는 것이다. 정세균의 사전에서는 국민 민중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발언권을 가진 존재가 도무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정치는 국민이 독재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한 유신독재 체제의 망령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정세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직 국회의장 박병석, 김진표 등은 내각제, 책임총리제 등을 주창했다.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대신, 그 권력의 중심을 국회로 옮기려 한 것이다. 동시에, 현행 5년 단임제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려고도 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양날의 칼이다.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임제로는 안정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 말을 바꾸면, 악의의 독재자가 더 효과적으로 집요하게 권력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권력은 선용되기도 하고 악용되기도 한다. 단임제는 권력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핵심은, 아땋게 유능한 이를 뽑아 좋은 정치를 하게 할 것인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집중과 악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1년 임기의 권력을, 같은 이에게 두 번(연임, 중임) 돌아가지 않도록 하되, 해당 공직자는 추첨으로 뽑았다.
추첨제는 평등의 정신에서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도덕성이나 능력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언제나 잘하고, 유능하고 한 것이 아니라,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 도덕성에서도 한결같은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이에 대해서, 신뢰란 금물이며, 한순간도 감시와 경계를 게을리하면 안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섯 가지 정치체제를 소개했다. 좋은 일인정(군주정), 소수정, 민주정(다수정), 그리고 나쁜 일인정(군주정), 소수정, 민주정(다수정)이 그것이다. 전자, 즉 좋은 경우의 정치체제에서라면, 세 가지 형태의 정체 중에서 일인정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나쁜 경우의 정치체제에서라면, 그런대로 가장 견딜 만한 것이 민주정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예를 들자면, 윤석열 정부 같이 좋지 못한 정치가 이루어지면, 일인정치보다 민주정치가 그나마 견딜 만하다는 것이고, 지금 이재명 정부 같이, 유능한 이가 정치를 잘하면 일인정치가 가장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언제나 이재명 같은 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윤석열 같은 이가 언제든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때 중임제는 단임제보다 치명적 해악을 가져온다. 그 나쁜 이가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가진 권력을 최대한 악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3선을 하고도 모자라, 장기집권을 위해 유신독재 개헌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의 권한과 개헌 국민발안권을 없애버렸다. 그중 1987년 헌법에 의해 대통령 선출법은 국민 직선제로 돌아왔으나, 국민발안권은 여전히 실종되었다. 1987년 헌법은 그런 점에서 여전히 민주 헌법이 아니라 유신독재의 잔재 헌법이다.
이렇듯,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양날의 칼로서, 장단점을 지닌다. 그런데, 이해찬(전 당대표)은 간담회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이라는 게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1987년 개헌 당시 임시방편으로 한 것”인바, “다음 22대 대통령 선거 때는 4년 중임제”로 하자고 한다. 이해찬뿐 아니라 이재명도 5년 단임제를 ‘기괴’한 제도로 평가한 적이 있다.
어떻게, 무슨 근거로, 1987년 헌법의 5년 단임제를 이해찬이 ‘임시방편’이라 치부하고, 이재명은 ‘기괴’한 제도로 폄훼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4년 중임제만 정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한편에서의 단임제의 장점 및 중임제의 폐단에 대한 인식과, 다른 한편에서의 유신독재가 빼앗아 가버린 국민 개헌발안권에 대한 각성이다. 이들에게는 대통령 임기만 대수이고, 국민발안권은 아예 거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서 국민 민중은 정치적 발언의 주체가 아니라 통합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벙어리이다.
민주당 원로(상임고문)들이 정청래의 강경 일변도의 대야 공세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고 한다. 강력한 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는 있지만, 민주당이 여당인 만큼 당원만 바라보기보다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주문이다. 문희상은 정청래의 ‘전광석화 같은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의 조언을, 임채정은 “내란의 뿌리를 끊어야겠다는 정 대표의 발언이 본질에서는 올바른 역사적 맥락을 이어가고 있지만 과격하지 말라”는 건의를 전했다 한다.
이 같은 민주당 원로의 주문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는 오직 여야가 갈등을 끝내고 공감을 ‘복원’하는 데만 치우쳤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당원도 국민도 정치적 갈등과 발언의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 통합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과유불급’하다거나, ‘과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국힘당과 협치하라는 주문이며, 달리 개혁을 목표로 하여 속도를 조절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들에게서 당원 및 국민은 그 협치의 도구로서 통합되고 그 협치를 존중할 객체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독재와 내란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니, 다시 ‘원로’라는 탈을 쓴 이들이 정치를 구태의연한 유신독재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조정환이 “빛의 혁명 183”이란 책에서 ‘국민발안제’ 도입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제헌헌법(1948)에도 청원권 형태의 국민발안제가 있었으나, “지금은 국회의 토론이 국민들의 토론을 대신하고 있다. 국민은 수동적 존재가 되어 정치적 의식의 가능성을 잠식당하고, 열등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한겨레, 2025.8.11.)
다만, 조정환은 “국민이 발안한 법을 국회에서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일지는 논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렇지 않다. 궁극적 주권자로서 국민의 논의와 결정은, 그 타당성 여부를 불문하고, 국회의 권위를 상회한다.